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앎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앎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들의 시각은 좁아져 간다는 사실을
과연 우리들은 느끼고 있는지 한번 궁리해볼 일입니다.
여기서의 앎이란 깨달음이 아닌 알음알이겠지요.

옛말씀에 "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니, 천지를 보지 못한다." 했는데,
우리가 수련을 하다보면 그러한 경우가 가끔씩 나타남을 볼수 있읍니다.

아무것도 모를때는 겸허하고 겸손히 경청할줄 알더니,
수련을 몇년쯤 하고나서 뭘 좀 알만 하면 모두가 귀를 막고 눈을 닫아버립니다.
그것이 완전한 앎이 아닐진데 눈만 높아져서 다른 말은 귀담아 듣지를 않는 것이죠.

앎은 투철해야 하며 전.후.좌.우.상.하에 걸림이 없어야 비로소 참으로 안다 할수
있는데 금일의 학문하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것만을 제일로 여기며 남의것은
귀담아 들을줄 모르니, 이러고서도 학문이 진척되기를 바란다면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읍니까.

그저 일방면이나 한쪽에서만 통할수 있는 앎으로서 전체를 판단한다면
위태롭기 그지없고 그것으로서 지혜의 눈을 가린다면 보다 다양한 우주의
明明을 어찌할 것입니까.

우리 연정원우 께서는 한번 뒤돌아볼 일입니다.
스승님께서도 공부에 제일 방해되는것이 眼高首卑라고 경계하신걸 보면
이것이 수행자의 어려움인것은 분명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 경계에서 벗어나는것이
지혜가 아닐런지요.

진정 앎으로 부터 자유로울수 있다면 두두물물이 그 소식을 전하리라 여기며
나부터 실천하고자 노력하고자 합니다.
우리 학인의 혜각은 마치 반디불과 같아서 자기주위만 어렴풋이 볼뿐 전체를
볼수있는 눈이 없기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감히 말할수 없습니다.
두려워 삼가해야할 일이 아닐런지.....

우리가 굴절된 시각을 버리고 사물을 그대로 직시 하려면 선입견을 버리고
보아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의 잣대만으로 사물을 보아서는 그 본래의 모습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오늘의 앎이 영원하다 여기지 않는 지혜로서
항상 새로움에 이르는 덕성을 함양하는데 다함께 최선을 다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알았던것이 내일또 그러할지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전수 심법에 있어서랴.

하루빨리 알고 있는것으로 부터 자유로울수 있기를 모든이에게 기원 합니다.

거거거 중지요, 행행행 리각 이라 하시니,
이보다 더 지극한 말씀이 그 어디에 있으리오.

그래서 남의 스승되기 어려우며
가르친다는 것이 누구나가 할수있는 일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스승님이 찾아오는 사람따라 대답을 달리 하셨던것이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모두가 다 자기가 들었던 것만을 정답으로 알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읍니까.

그래서 구한말의 경허선사는 비뚤어진것은 비뚤어진대로 바르다고 말했던것 같습니다.
남들과 쟁론을 하지말라시던 선생님의 음성이 기억에 생생한데 달리 무슨 말을
하겠읍니까.

우연히 다른 단체의 수련자가 우리 연정원에 와서 수련과 얻음에 대해서 글을 쓴것을
연정원우들과 함께 구구히 논하는 것을 보고
나 또한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보며
느낀바 어지러이 난초해 보았읍니다.
혹 말에 실수가 있으면 사정없이 칠책해 주시기를.


남산에 구름이 이니 북산에 비가내릴뿐.


귀가 여리고 의심이 발동하면 활 그림자가 뱀으로 보이는 것이니
이는 다 마음의 장난인 것이다.

인왕산인 무무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