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시절 당시 장안을 휩쓸던  소설  [단]을 읽고  나는  호흡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뭔가 잃어버린것을  발견한 기쁨을 느끼며 가슴벅찬 감동으로 수련을 시작 하였다.
다니던 미술학원을 빼먹으며  당시 우리집 뒷산 이었던 황련산에서 노천 수련을 시작 하였다.
커다란 바위에 앉아서 폼을 잡으면 영락없는 도사같았다.
그당시는  그것으로도 충분 하였다.
수련 자체가 너무너무 좋았다.
고기가 물을 만난듯한 기쁨에 젖어서 나는 입시고 뭐고를 생각지 않았다.
닥치는대로 호흡에 관한 책들을 사보기 시작 하였다.
그당시 환단고기와 단군세기 등의 민족 고전들이 발간 되었는데 그내용가운데 소도경전 본훈이 많은 교훈을 주었던것같다.
그리고 편저자의 감격에 겨운 소리로 천부경을 소개한 것을 보고 나는 뭔가 모르지만 뿌듯한 희열과 감동을 느꼈다.
그후 더욱 전문적으로 하기위해 금정산에다가 움막을 짓고 학교가 끝나면 바로 산으로 올라가서 수련하고 거기서 잠을자고 내려와서 등교하는 생활을 하였다.
집에서는 미술학원에서 밤샘하는 것으로 거짓말을 하였다.
아마도 내 수련중에서 제일 꿈같은 시간들 이었던것 같다.
수련이 잘될때는 앉아서 꼬박 밤을 새곤 했는데 아침에 창문밖으로 흰눈이 내릴때면 극락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호사 다마라 했던가?
수련 참고삼아 책 읽기를 즐겼는데
홍태수의 [단의 실상],[단의완성],[신단] 이 세권의 책을 사본것이 그만 옆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당시 나는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간할수 있는 눈이 없었다.
그저 道나 호흡은 다 같은 것인줄 알았다.
사람이 공중에 날아가는 사진이 여러장 있었는데 그것에 눈이 멀어 지식법을 시작 하였다.
조식수련 한달남짓 지날 무렵이었다.
그당시는 열성이 대단하였고 몸도 건강하여 40초가 금방 되었다.
지식으로 호흡을 바꾸니 길이는 훨씬더 길어졌다.
그리고 엄청난 힘도 동반되어서 더더욱 열심히 옆길로 빠져들었다.
당시 허리에 쇠줄을 매고 힘을 주면 줄이 끊어져 버렸다.
그러다가  어느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힘을주어 참는 호흡을 하는데
기운이 양쪽 다리로 쑥 내려가는데 쓰라린 아픔과 함께 걸을수가 없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운을 멈출수가 없었다.
평상시 4초호흡을 해도 그대로 영락없이 기운이 내려가서 도저히 통증때문에 잠시라도 편할날이 없었다.
아무리 살살해도 허사였다.
일부러 아랫배를 움켜쥐고 호흡을 가슴으로만 쉬었다.
걸음걸이도  엉거주춤 이상했다.
그때의 고통과 노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 증상이 없어지는데 약3~4년이 걸렸다.
그동안은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하고싶은 것을 할수없을때의 고통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서서히 아주 아주 서서히 증상이 사라지고 다시 4초부터 시작 하였다.
조금만 무리하면 기운이 내려갈 징조가 보여서 숨을 늘릴수도 없었다.
(먼 훗날 알게된 사실 이지만 지식 호흡법은 무술하는 사람들이  힘을 쓸때                                           사용하는 호흡일뿐 정신 수련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그당시 나는 학업을 포기하고 입산 수련을 결심 하였다.
집에 말씀을 드리니 난리였다.
그래도 끝까지 나의 뜻을 말씀드렸다.
그동안 제 멋대로 자유분방하게 자란 탓인지 남이 뭐라고 간섭하는걸 허용치 않았다.
그저 내생각 내뜻대로 살았다.
그래도 입산만큼은 허락을 받아야 될것 같았다.
당시 사업을 하던 형님이 따라다니며 말렸다.
도데체 뭣에 빠져서 그러는지 알아야 말리던지 말든지 한다며 연정원까지
와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형은 나를 후원하는 후견인으로 바뀌었다.
우리집에서 방패가 되어 주었다.
집에서 형의 입김은 대단했기에 나는 안심하고 경제적 지원까지 받으며
입산할수 있었다.
그때가 1990년 8월 28일 이었다.
입산 하기전 한달간을 서울 여해관에서 수련 하며 장소를 물색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봉우 선생님께서 오후에는 매일 연정원을 나오셨는데 그때 나의 장단점을 지적해 주셨던것이 평생 기억에 남을것 같다.
심심 할때는 바둑도 두시며 여러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러다가 장진우 형을 만나게 되었는데 양평을 소개해 주었다.
장만규 선배님이 땅을 사서 연정원 수련장으로 사용 하고자 한다는 곳이었다.
양평 금왕산으로 입산 하였다.
당시 호흡 16초 , 인간소양 0점 , 체력은 유격대 출신이라 매우 좋았다.
입산할 당시는 혼자였는데 석달후 세명이 합세하여 겨울을 보냈다.
이제경, 권혁식,권구만 해서 네명이었다.
그때의 수련 방식은 100일 결재 방식,
100일간을 밤에 앉아서 새고 낮에 자는 것이었다.
산 중턱에 집이 있고 앞산에 수련 움막이 있었다.
나는 그때 하루 16시간을 그자리 에서 앉아서 버티었다.
저녁먹고 올라가면 5시 정도 인데 다음날 9~10시 정도에 내려 왔다.
거의 추위와의 전쟁 이었고 잠과의 싸움이었다.
뒷날의 생각으로는
차라리 그때 따듯한 방에서 호흡에만 집중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지는것을 싫어해서 다 내려가고나서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벽 없는 움막에서 눈을 맞으며 겨울을 보내니 다들 발에 동상이 걸렸다.
그리고 음식이 왜 그렇게 먹고싶던지 끝날날을 벼르고 별렀다.
그래도 그당시가  방법이야 잘못되었건간에 가장 열심히 수련 한것같다.
100일간은 나는 호흡의 정진은 없었다.
어쩌다가 잘될때 30여초 보통은 16~20초 정도 였다.
여기서 나는 초기 수련시 眼,耳,鼻,舌,身,意 육근의 방해를 알았다.
그리고 공부는 자기와의 승부일뿐 남들과 비교 하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저 홀로 자신속을 밝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래 봤기에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봄이 왔다.
수련에도 긴장이 좀 풀리고 여유를 찾을 즈음 나에게도 봄이 왔다.
별별 정신적 신비로움을 이때 가장많이 체험하였다.
호흡도 40초를 오르내리며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호흡은 좌협을 지나서 명문으로 향할 즈음 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허기가 그저 조금 돌았을 뿐인것을 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온갖 기이한 것에 홀려 보기도 하고 얼어 붙을듯한 미녀들과도 상봉해 보았다.
참 많이도 精을 빼앗겼다.
그건 나 혼자라면 절대로 극복 못할것 같은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삼재주를 1000번이나 외고 해서 그런지 그럴때마다 누군가가 도와주는것 같았다.
그게 다 자신속의 잠재된 욕망의 장애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당시의 공부는 봉우 선생님께서 꼭 꿈으로 나타나셔서 그때그때의 상황을
봐주시곤 했다.
내가 평소 의심가는것을 질문하면 대답해주시고 하는 식이었는데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하나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러다가 좀빨리 갈려고 욕심이 생겨 그만 약을 찾은 것이 고장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때 봉우선생님 께서 “약은 왜 찾누? 나 공부 할때는 약 안먹었어.
         그냥 쫓아 다니며 했지.약 같은데 의지하지 말고 정성껏이나 해.”
라는 다소 화난 목소리로 우리들을 경계 하셨는데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스승님 죄송합니다. 그때는 제가 철이 없었어요.)
약을 먹는데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칠않았다.
결국 욕심으로 생긴것은 결말이 좋지 않았다.
간장을 다쳐서 한 1년을 불덩이 처럼 다녔다.
약은 조심해서 먹어야지 함부로 좋다고 아무나 먹어선 안된다.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가서 병을 치료하는 약은 써되 수련 빨리 할려면 약 찾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약 찾을 정신있으면 수련에 집중하라
그러면 그사람은 분명히 공부 성공할 것이다.
마음이 한가지로 순일하게 죽 나가야 되는데도 잘안되면 여우같은 의심이
생겨서 딴짓을 하는데 그것이 誠不誠시험인줄 누가 알겠는가.
거기에 걸리면 진전이 없다.
수련중 잘되다가 어느순간 답답하고 뜻되로 안될때가 있는데 이때는 안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한단계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때는 무조건 밀고 나가야 하는데 나는 거기에서 많이도 당했다.
모르면 당하게 되어있다.
여러차례 반복하다 보니 알게 되었고
한번 시험삼아 그대로 죽 밀어 보았더니 거기서 진 일보의 소식이 있었다.
그후로는 알고서도 당할때가 참 많았다.
그래서 공부가 힘든것이다.
그것은 방법이 힘들거나 어려워서 안되는것이 절대로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학인의 정성
얼마나 정성을 다 하느냐 아니냐 일뿐.
한눈 팔지않고 집중하여 순일하게 죽 나가느냐 하는것 뿐이다.
그래서 내가 누누히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쓰라린 경험과 그댓가로서 받은 상처 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것일까?
흩어지지말고 오직 한가지에 의지하라 호흡이면 호흡, 그것 하나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의지와 자신감과 공부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서야한다.
껍질에 가려진 거짓 자신을 보면 확신 대신 의구심만 생기니
본래의 자기를 보아야만 진짜 믿음(信)이 이런 거구나. 할것이다.
그때의 믿음이란 상상을 초월한 힘을 발휘하니
이 힘을 쓰지 않고 왜 밖으로 작은 힘을 의지 하는 것인가?
내가 왜 약을 찾지 말고 아무것도 밖으로 의지 하지 말라고 하는고 하니 이 믿음의 힘이 나올려면 자기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나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요, 다른것이 나빠서 그런것이 아니다.
하나를 의지하면 자신의 힘은 그만큼 줄어든다.
생각해 보라.
궁지에 몰린쥐가 고양이를 무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지를.....
그건 자기 밖에 믿을것이 없는 절대의 긴장속에서 비로소 힘이 나오니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저 믿는다는것이 아니다.
그것이 나오면 공경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다.
하늘 주재주 그것이기에 삼라만상의 오묘함을 어찌 공경하지 않을수 있으며
그무한한 힘이 갖춰져 있음을 어찌 경탄하지 않을수 있으리오.
내가 여러차례 경험한 바이고 궁리 하고 실험한것이니
이말에 믿음이 가거든 실천해보기 바란다.
공짜로 우주 전체를 팔고자 하는 것이다.
독불장군적 자만심을 기르라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수련은 계속 되었다.
인간적으로도 조금씩 성장했음인지 마음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마음으로도 깨달음이 와서 혼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익어가고 벗겨가고 있었다.
고행으로 지난날의 업보를 대신하면서........

그리고 또한차례의 시련과 고통이 왔다.
오직 욕심의 발현을 막을수만 있다면 내가 겪은 시행착오의 90%는 없으리라.
욕심 그것은 정말 무서운 댓가를 치루는 것이었다.
좀 수련에 박차를 가해볼 생각으로 동굴을 파고 고력수행에 들어갔는데
그것이 몸에 엄청난 타격을 주어서 지금까지도 회복을 못시키고 있다.
하루한끼  밥먹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은 무조건 동굴에서 수련했다.
추운 겨울이라서 깊지않은 동굴은 냉기와 한기로 몸을 상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당시 왜 그다지도 어리석은 방법만을 택했는지
아무래도 전생의 업보가 무거운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이 나질 않는다.
동굴수련 전까지만 해도 안색도 좋고 그런대로 건강도 좋았는데
그후에는 한기와 냉기로 신장과 위장 그리고 간장까지 완전히 맛이 갔다.
으으으  몸과 마음을 아울러 닦아야 되는데 정신을 위해 몸을 혹사 시켰으니 오오 나의 육신이여  나를 용서 하라.
내가 어리석어 너를 망치고야 말았구나.
여름에도 무릎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완전히 노인의 몸 바로 그것 이었다.
양기가 쇠한 어리석은 수련자의 모습,
그것은 초라함의 극치였다.
냉이 뱃속에 쌓여서 아직도 땀을 많이 흘려서 양기가 허하면 무릎으로 바람이 들어오니
그때의 그 쓰라림을 어찌 잊을수 있으리오.
몸이 극도로 약해질 즈음 나는 길을 보았다.
가서는 안될길과 내가 가야할 길을 동시에 나는 보게 되었다.
그게 꼭 혈기 왕성 할때는 보이지 않더니
힘을 모조리 빼 놓고 갈 힘조차 없을 때,
그때 살며시 나타나는 것이다.
길은 보이는데  
갈 힘이 없었다.
앉아서 수련을 계속 하기만 하면 되는데도 앉아서 한시간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몸이 허약하니 온갖 어지러운 상념들이  교차하고, 힘은 없어 버틸수도 없을때 과연 나는 어찌해야 좋은가.
장고에 장고를 한끝에
이번 생을 나는 포기 했다.
“에이 다음 생이나 잘해보자.”
이런 심정으로
기나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순간.
아아아
이럴수가.
이것이 도리어 길이라니.
이러니 알지못하는 사람이 어찌 스승없이 혼자서 길을 가리오.
한단계 나아가는데도 이러한데........

거기에 나의 하늘이 있었다.

기쁨과 희열로 나는 온종일을 울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또얼마나 올렸던가.
거기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가식의 탈을 벗고서 빙그레 웃고있는 나의하늘.
가끔씩 내가 힘들어 지쳐 쓰러져 있을 때마다 나타나서 나를 이끌어 주던
바로 그 존재.
편안하고  든든하고 세상 모든것이 다 나였고
구할것도 얻을것도 더이상 없었다.
이제 너만 놓치지 않으면 되었다.
내 죽어도 너를 놓치지 않으리라.

그렇게 가치가 전도될수 있을까?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고난후에 읊었다는 오도송의 이상한 예기들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분별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면 진짜로 그런데
세상의 잣대로 보면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 뿐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그러하다고 밖에는
자신의 껍질을 한번 벗겨 보라고  말하고 싶다.

호흡  
그것은 실로
무한한 에너지의 결정체이다.
이것으로 보림치 않으면 단단히 결속시킬
방도가 없었다.
나는 우선 몸을 보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의 수련이었다.
몸의 균형을 최대한 좋게하여
그 하나를 지켜가고 불려가는일
아무런 일도없이
그것 하나만 지켜보고 혼자 웃으며
혼자서 실성한 사람 처럼 그렇게 그렇게  나의 수련은 오직 나와의
대화였다.
이때 나의 실수는 하나에만 온신경을 쓰느라
호흡에 신경을 별로 못썼다는 것이다.
호흡으로 불려 나가야 되는데도 ......
그렇게  일없는 나의일이 계속되고
나는 점점 현실속에서 사라져 갔다.

다생의 습기가 사라질려면 아직도 길은 멀기만 한데
어디선가 한소리 크게 들려오니
아아 이것이 숙세의 연이런가.
알고도 당하고 모르고도 당하는 구나.

그리고 수련 또 수련.....
호흡은 추인이 법대로 되어서 소주천을 완성했다.
명문에서 우협으로 뚫기가 가장 힘들었고 가장 시간이 오래 소요되었다.
그리고 기운을 이리저리 끌어보기도 했는데 잘되기도 하고 잘안되기도 하였다.
“마음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나사렛  예수-
  
하늘은 은혜로와 학인으로 하여금
그길을 스스로 알게 하며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어 특별히
귀여워 하지를 않네.
하늘은  빈틈이 없어 한 사람도 버려 두지 않거늘
어리석은 사람들은 분별로서
스스로를 한정 짓는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으랴.
쓰라린 좌절과 고통끝에  비록 실패는 했을 망정 길이라도 보았으니
이것으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나는 다시 세상속으로 나왔다.
세상 속에서 부딪치며 사람과 함께
수련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사람답지 못하게 살아 왔으며
나는 또 얼마나  사람들을 괴롭혀 왔던가.

다시한번 원신 갱생을 도전해 보려면 나는 먼저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인간이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도 되지 못한체
어찌 신선을 꿈꾸리오.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끝내고 나는 가리라
나의 고향 땅으로.
복숭아 꽃 만발한 내 마음의 고향으로.....

이상이 대략적인 나의 15년 수련기 이다.
어찌 순간순간을 다 말할수 있으리오.
다만  어리석은 후회와  허물만이  악취를 풍기도다.

나와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이 글을 올립니다.

               인왕산 아래에서  무무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