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自警文(자경문)>>

 

福(복)은 儉素(검소)한 마음, 儉素(검소)한 生活(생활)에서 生(생)하며 德(덕)은 謙遜(겸손)하고 辭讓(사양)하는 마음과 行動(행동)에서 生(생)한다.

智慧(지혜)는 고요히 앉아 생각하는 데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근심은 愛慾(애욕)에서 生(생)하니 지나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災殃(재앙)은 物慾(물욕)에서 生(생)기니 慾心(욕심)이 지나치면 곧 盜心(도심)으로 變(변)한다.

허물은 輕妄(경망)된 行動(행동)에서 生(생)하니 모름지기 愼重(신중)히 處身(처신)하라.

참으면 될 것을 暫時(잠시)를 못 참고 妄動(망동)하면 자칫 남과 다투게 되니 나도 남도 모두 傷(상)하고 罪(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益者三友(익자삼우), 損者三友(손자삼우)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질고 狡猾(교활)한 者(자)와는 벗하기를 삼가 하라.

德(덕)이 있는 者(자)를 가까이하고 智慧(지혜)로운 者(자)를 따르라.

無知(무지)하고 無識(무식)한 者(자)에게는 恒常(항상) 寬容(관용)을 베풀고 배움에 힘쓰도록 타일러서 하루 速(속)히 無知(무지)와 無識(무식)에서 벗어나도록 하라.

不祥(불상)하고 가난한 사람을 同情(동정)하며 도와주려고 힘쓰라.

오는 者(자)는 拒絶(거절)하지 말고 가는 者(자)는 잡지마라.

나를 남보다 優待(우대)해 주기를 바라지 말 것이니 이것은 驕慢(교만)에서 生(생)하는 마음이다. 먼저 自身(자신)을 正確(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남을 害(해)치면 도리어 남에게서 내가 害(해)를 입을 것을 생각하라.

 

大仁(대인)은 不仁(불인)이며 大勇(대용)은 不忮(불기)라 하고 大廉(대렴)은 不淸(불청)이라 하니 먼저 무엇이 어진 짓이며 무엇이 眞實(진실)한 勇氣(용기)이며 어떻게 살아야 淸廉(청렴)한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니 먼저 스스로의 머리를 밝혀 分別(분별)의 能力(능력)을 갖추어라.

勢道(세도)에 依支(의지)하여 일을 成事(성사)시키려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災殃(재앙)이 따른다는 것도 覺悟(각오)해야 할 것이다.

 

흔히 工夫(공부)의 進展(진전)이 없다고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좀 慾心(욕심)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다. 먼저 工夫(공부)의 進展(진전)을 바라기 以前(이전)에 本人自身(본인자신)의 心性(심성)이 바르게 變(변)해야 될 것이다.

萬一(만일) 自身(자신)의 心性(심성)에는 아무런 變化(변화)가 없는데도 工夫(공부)의 進展(진전)이 있다면 그것은 큰 悲劇(비극)의 前兆(전조)일 것이다. 本人(본인)에게도 큰 不幸(불행)이려니와 이웃과 온 사회의 災殃(재앙)이 始作(시작)되는 것이다. 理解(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거든 조용히 눈을 감고 靜慮(정려)에 들어가자.

去去去中知 行行行裡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