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학문을 배움에 있어 그 방법을 따지자면 헤아릴수없이 많은 법이
있을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택한 방법은 하나를  오래도록 궁구하여 그 결론을 스스로
내리고 다시 그것을 가지고 선생님이나 선배들께 질문하고 부족한것은
고쳐서 그것으로 다시 다음으로 나아가고 하는 것이었다.

해 보지도 않고서 먼저 질문부터 하기가 나로서는 감당할수 없었으며,
감히 질문을 드릴 용기도 없었다.

나중에 안기석 선배님과 대화 하던중 선배로 부터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다.

요즘은 궁금하면 해 볼때까지 해 보지도 않고서 무조건 질문부터 던지고
보는데 좋은점도 있겠지만 스스로의 힘을 약화시키지나 않을까, 노파심이
생김을 감출수 없다.

이래서는 알음알이는 늘지언정 진정한 앎은 구하기가 힘들다.
먼저 알고서 힘써 행하는 것이 어찌 나쁘냐고 하겠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 모르는 것이 있어야 알려고 애를 쓰는 것이지, 다 안다면
무슨 마음이 있어 힘든 길을 걷겠는가."

내가 공부할 적에 적잖이 고생을 해봐서 혹 질문을 하면 그 안타까운 마음에
자세히 아는데 까지 중언 부언을 했던 것인데, 이것이 오히려 병통이 됨을
모르는바 아니다.

옛날에 두 스승이 있었는데,
한분은 아주 자세하고 상세히 가르쳐 주고,  다른 한분은 한번 가르치고는
몇 달이 지나서야 한번 쓱 둘러보고 가시곤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세히 가르치신 분 밑에는 저단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하건 말건 그냥 내버려 둔 스승 밑에는 고단급들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내가 이런말을 하는 것은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요,
알려고 애를 써 본후에 그래도 모르겠거든 질문을 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머리에 쏙쏙 들어와서 문답자 모두가 말도 뜻도 버리지 않을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일뿐, 누구를 나무라기 위한것이 아니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연화시중을 했으나, 오직 가섭존자만이 그 뜻을
알수 있었던 것도 가르쳐서 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요, 존자는 존자대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그 뜻을 헤아릴수 있었던 것이다.

크게 성공 하려면 크게 짓고,
작게 성공 하려면 작게 지으라고 스스로에게 부탁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그리고 경우야 고맙다.
너의 덕분으로 형도 많은것을 깨닫는 구나.

      박운규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