勿勿子 遺稿(물물자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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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신 120주년을 맞이하여

 

 

 有段者 出現(유단자 출현)을        


기다리며

 

  

  硏精院(연정원)에서 精神(정신)硏究(연구)하기 ()基本準備(기본준비)體鍊(체련)을 하지 않으면 有終(유종)()()()()靑年院友(청년원우)들에게 體鍊(체련)을 시킨다면 若二年間(약이년간)이면 充分(충분)現世界各種記錄(현세계각종기록)突破(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優先的(우선적)으로 靑年(청년)들에게 體育訓練(체육훈련)을 시킨 然後(연후)精神硏究(정신연구)方向(방향)轉向(전향)시키고자 하는 것이다.運動競技等(운동경기등)에서 普通訓練(보통훈련)하는 사람보다 優越(우월)成果(성과)를 얻게 된 ()에는 信心(신심)이 나서 精神硏究(정신연구)入門(입문)한다면 容易(용이)하게 短時日(단시일)내에 昇段(승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體育(체육)으로부터 精神硏究(정신연구)轉向(전향)하는 것이요. 精神硏究(정신연구)專門的(전문적)으로 한다면 亦是(역시) 一年以上 二年以內(일년이상 이년이내)昇段可能性(승단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昇段(승단)만 한다면 얼마든지 自習(자습)할 수 있어서 漸進的(점진적)으로 高段(고단)이 되는 것이다. 有段者(유단자)로는 指導者(지도자)만 있으면 再昇段(재승단)勞力(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昇段者中(승단자중)에서도 部類(부류)가 다르되 原理(원리)硏究(연구)하는 人士(인사)라면 中段級(중단급)에만 가면 他心通(타심통) 觀心法(관심법)이 되는 ()外交(외교), 軍事(군사), 參謀(참모), 行政(행정)利用(이용)할 수 있고 또 科學的(과학적)으로도 理化學(이화학)專攻(전공)하는 ()들의 幾培(기배)效力(효력)을 볼 수 있다. 精神統一(정신통일)이 되어 記憶力(기억력)自然增强(자연증강)하는 ()로 무슨 學科(학과)專攻(전공)하는 人士(인사)라도 다 效果的(효과적)이라고 본다. 精神學(정신학)高段者(고단자)라면 國與國間(국여국간)이나 人與人間(인여인간)重大(중대)效果(효과)를 얻을 수 있다. 古時代(고시대)姜太公(강태공) 鬼谷子(귀곡자), 張良(장량), 嚴子能(엄자능), 諸葛亮(제갈량), 陶淵明(도연명), 邵康節(소강절) 같은 中國人物(중국인물)들이나 淵蓋蘇文(연개소문), 乙支文德(을지문덕), 姜邯贊(강감찬), 徐花潭(서화담), 鄭北窓(정북창), 宋龜峯(송구봉), 李栗谷(이율곡), 曺南冥(조남명), 李土亭(이토정), 朴叔夜(박숙야), 許眉叟(허미수)등 우리 東邦精神界(동방정신계) 古今重鎭(고금중진)들이다. ()에도 有名(유명) 無名(무명), 隱名(은명)無數(무수)高段中段者(고단중단자)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現世界(현세계)에서 印度(인도)高段者(고단자)가 있고 中國(중국)高段者(고단자)가 있는 것은 事實(사실)이요, 우리나라에도 隱君子(은군자)高段者(고단자)印度(인도)中國(중국)에 뒤지지 않을 만치 있다는 것은 乾象(건상)이 증명하는 것이요. 實證(실증)間間(간간)發見(발견)되고 있다.

  精神界(정신계)에서는 우리 民族(민족)絶對(절대)他民族(타민족)에게 損色(손색)이 없다는 것을 精神硏究(정신연구)昇段者(승단자)로는 다 아는 것이다. 그러나 隱君子(은군자)들은 獨善其身(독선기신)하는 聖哲(성철)目的(목적)하고 나가는 사람들이라 우리 民族(민족)들과 共榮共存(공영공존)目標(목표)로 하는 院友(원우)들이 一日(일일)이라도 ()中段以上(중단이상)이 나오기를 바래서 이 붓을 드는 것이다. 이 나라 傳來(전래)하는 白山一派(백산일파)智異山一派(지리산일파)가 있으나 그 源頭(원두)에 가서보면 다 白山宗(백산종)인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 우리 民族中(민족중)有名(유명) 無名(무명)聖哲(성철) 英傑(영걸)自處(자처)하며 精神硏究(정신연구)標放(표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보기에는 거의 다 正統精神派(정통정신파)()로 없고 다 傍溪曲逕(방계곡경)을 찾는 人士(인사)들이 아닌가 한다. 各派(각파)에서 다 我田引水(아전인수)俱曰(구왈) 余聖(여성)이라하니 우리로서는 ()이 나오지 않는다. ()大聖孔子(대성공자)不居(불거)하시었거늘 現世(현세)에는 어찌 聖神自處(성신자처)하는 人物(인물)이 그리 많은가 아무리 生覺(생각)해 보아도 魚目混珠(어목혼주)하는 것 같다. 左道房(좌도방), 右道房(우도방) ()들도 다 隱名(은명)하고 現身(현신)하는 人物(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道人(도인)이나 精神界高段者(정신계고단자)는 아닐지라도 이 硏究(연구)正法(정법)授受(수수)하고 비록 微微(미미)하게나마 實行(실행)經驗(경험)이 있는 關係(관계)愛惜(애석)하게 생각하고 置之度外(치지도외)할 수 없어서 先輩(선배)들에게는 罪悚(죄송)한 일인 줄 알지만 내가 硏精院(연정원)發足(발족)하게 한 것이다. 나는 이 硏精(연정)으로 聖神(성신)을 바라고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民族(민족)擧族的榮譽(거족적영예)를 우리 硏精院友(연정원우)成就(성취) 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뿐이오. 院友中(원우중)에서 누가 먼저 成功(성공)하든지 간에 成功者(성공자)續出(속출)하기만 바라고 나 個人(개인)成不成(성불성)不關(불관)하는 바요 院友中(원우중)에서 中段以上者(중단이상자)만 나오면 나는 全責任(전책임)引渡(인도)하고 一閒人(일한인)으로 硏精院友(연정원우)一人(일인)으로서 餘生(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甲午年 七月 五日 鳳宇生妄記

(갑오년 칠월 오일 봉우생망기)

 

硏精院重興

 

  연정원을 重興(중흥)하자면 먼저 연정원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연정원을 重興(중흥)하여 유리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것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연정원이라는 것은 우리가 수십 년 전부터 정신 연구를 목표로 寺門(사문)에서 참선도 해보고 山上(산상)에서 석굴이나 토굴을 만들어 단신이나 혹은 삼사인 혹은 십여 인이 정신을 수련해 본 일도 있고 또는 해변에나 喬木(교목) 위에서 苦力修行(고력수행)도 해보며 雪上(설상)에서 耐寒(내한) 수행도 해보고 여름에 水中(수중)에서 水修行(수수행)도 해보던 차에 우리 同志(동지)들 십여 인이 계룡산에서 집단으로 耐寒(내한) 수행으로부터 苦力(고력) 수행을 계속하던 장소를 硏精院(연정원)이라 命名(명명) 하였던 데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연정원이라는 이름 아래에 우리들이 精神硏究(정신연구)를 목표로 동지들이 集合(집합) 하였던 것이며, 院友中(원우중)에서는 상당한 단계까지 갔던 사람들도 있었다. 院友(원우)의 자격은 누구나 연정원의 목표를 따르는 同好者(동호자)로서 精神修鍊(정신수련)에 참가할 수만 있으면 되었고, 비록 精神修鍊(정신수련)은 같이 하였더라도 目標(목표)하는 바가 다르면 院友同志(원우동지)로 취급하지 아니하였다. 우리의 연정원 목표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항상 말하는 우리의 大皇祖(대황조) - 國祖檀君(국조단군)始祖(시조)가 되는 가장 최초의 원단군을 뜻한다 - 東洋文化宗敎(동양문화종교)元始(원시)가 되고 大皇祖(대황조)敎化(교화)儒佛仙(유불선)의 분과를 이루었다는 우리 고대문화와 역사를 다시금 회생시켜보자는 것이 바로 연정원의 목표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白頭山(백두산)中心(중심)으로한 고대문화와 역사를 우리 손으로 다시 重興(중흥)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夢想(몽상)으로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아주 소년 시대부터 이런 암시를 받은 일이 있었고 그 후 精神硏究(정신연구)로 중국 일본 각지와 우리나라 명산대천의 古蹟(고적)이 있을 만한 곳은 모두 다녀보며 문헌은 문헌대로, 고적은 고적대로 또 내가 연구하는 數理學(수리학)에서도 理論的(이론적) 증거를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보며 확실하게 도달한 결론인 것이다. 연정원에서 修養(수양)하는 방식은 바로 大皇祖(대황조)가 가르치신 方式(방식)대로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 해오던 유구한 세월을 두고 우리 조상들이 繼繼承承(계계승승)해서 盛衰(성쇠)를 거듭하여 전해오던 법이요, 현대 서양에서 精神(정신학)을 연구한 것이나 다같은 것이다. 다만 그 민족의 관습이나 풍속이 다른 관계로 약간의 차가 있을 뿐이다. ......후략

 

단기 4320923(1987.11.14) 연정회보 제5호에서...

 


硏精重要性


 

  우리나라에 上古時代(상고시대)부터 鍊氣成道(연기성도)한 분이 相當(상당)()가 있다는 것은 비록 歷史的(역사적)으로는 確證(확증)할 수는 없겠으나 野談(야담)傳說(전설)로는 우리나라 到處(도처)에 널려있는 것을 모두 알 것이다. 그럼에도 近年(근년)에 와서 아주 그 痕迹(흔적)조차 볼 수 없는 것은 그 이유가 那邊(나변)에 있는가? 深考(심고)必要(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는 龍虎山(용호산) 張道陵(장도릉)後孫(후손)을 대대로 從一品 禮遇(종일품 예우)를 하여 天師(천사)神職(신직)을 주어 後人(후인)들에 就學(취학)()로 하고 公夫子(공부자)子孫(자손)도 역시 대대로 正二品(정이품)禮遇(예우)로 선비들로 하여금 慕聖之心(모성지심)昻揚(앙양)케 하였다. 忠孝敬烈(충효경열)()가 될 만한 人物(인물)들은 모두 朝廷(조정)에서 崇拜(숭배)하여 후인들이 推仰(추앙)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하였는가 하면 우리들이 당연히 崇拜(숭배)하여야 할 大皇祖(대황조)形式的(형식적)이라도 위하는 사람이 적고 歷史的(역사적)으로 우리민족의 偉大(위대)業績(업적)을 남긴 先賢(선현)들도 혹 지방에 따라 荒廢(황폐)祠宇數間(사우수간)香火(향화)조차 이어가기 어렵고 또 東方十八賢(동방십팔현)이라 指稱(지칭)하는 先賢(선현)들은 文廟(문묘)配享(배향)은 하였으나 士林(사림)들이 文廟香火(문묘향화)維持(유지)할 방법조차 없을 뿐 아니라 國家(국가)에서도 가장 ()한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래도 先正子孫(선정자손)에 대하여 옛날 같으면 士林(사림)들이라도 待遇(대우)했을 것이지만 現時代(현시대)에는 名字(명자)조차 알 길 없는 것이다.

  오천년 역사상 큰 업적을 남긴 巨星(거성)들 마저도 국가차원에서는 小毫(소호)禮遇(예우)意思(의사)조차 보이지 않고 다만 現實主義(현실주의)로 옛사람의 일은 덮어두고 現存(현존)하는 사람들이나 잘하자는 것이다. 過去(과거)없는 現在(현재)가 어디에 있으랴마는 現實(현실)로 보아서 위로는 爲政者(위정자)들로부터 아래로는 民間(민간)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實情(실정)이다. 내가 韓熙錫君(한희석군)雲上十萬里(운상십만리)라는 글을 보았는데 그 글에 한 말이 佛國(불국)에서는 那翁(나옹: 나폴레옹)失脚(실각)英雄(영웅)이라고 하지만 그의 遺跡(유적)을 그대로 保存(보존)하고 記念(기념)하노라 하였다이것은 那翁(나옹)崇拜(숭배)한다느니 보다 第二 第三(제이 제삼)新那翁(신나옹)出現(출현)을 바라는 까닭이다.....후략

 

甲午年 六月 初十日 鳳宇書 于 有莘草堂

(갑오년 유월 초십일 봉우서 우 유신초당) 연정회보 제 30호에서

 


硏精院 中興의 해에


 

  회고 컨데, 우리나라는 신라 삼국통일 이후 불교사상의 보급으로 고유한 우리 수양법을 망각하게 되어, 이때부터 우리민족은 약화되고 말았다. 여기서 사대사상이 전성해서 우리의 정신문화는 흔적마저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憂國憂族(우국우족)하는 先賢(선현)들이 당시 국가의 施策(시책)이야 무엇이라 하든지 개의치 않고 정신수양법을 以心傳心(이심전심)으로 계승하여 衰退一路(쇠퇴일로)로 천여 년을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 心法(심법)이 전해온 것만도 우리 민족에게 다행한 일이라고 보아야한다. 이것은 오로지 삼국통일 이후 國策(국책)으로 억압해서 발전을 못하게 하는 와중에서도 前賢(전현)들이 희생적 정신으로 이 법을 전해주신 까닭이다고려 오백년의 國敎(국교)인 불교 전성시대를 지내고 이조 오백년의 유교 전성시대를 지내고도,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곳에서 수십 년씩 공을 쌓아 당시 국가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을 習得(습득)해 가며 後人(후인)에게 전해 주신 그 공헌들이야 말로 가장 위대하다고 본다조선조 말엽에 와서는 불교도 망하고 유교도 아주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겨우 명맥만 전해오던 이 정신수양법도 延命(연명)할 여지가 없는데, 더구나 國恥(국치)를 당하고서는 日帝(일제)壓政(압정)하에 감히 수양조차 못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강압 속에서도 各派(각파)修養士(수양사)들이 命脈(명맥)保存(보존)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三南(삼남)에서는 지리산파와 대소태백산파와 속리산파와 계룡산파와 邊山派(변산파)가 있었고 경기에서는 송악산과 삼각산과 설악산에 약간의 散逸(산일)이 있었고 강원도에서는 금강산파와 오대산파의 소수가 있었으며 황해도 구월산파와 평안도 묘향산파가 상당수가 있었고 함경도에서는 백두산파가 좌우양파로 나누어 있었다.

  내가 4, 50세 될 때까지는 기성 殘存派(잔존파)들의 생존한 분들이 거의 백을 헤아렸는데, 을유 광복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만주, 몽고와 중국에 왕래하던 분들의 소식이 묘연하고 6.25사변이 경과한 후로는 남은 별 몇 개가 明滅(명멸)할 뿐, 그 후 계승해서 수련하는 인사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청년세대들이, 정신수양방면에는 현실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까지 이러한 狀況(상황)대로 이 공부를 미루기만 할 것인가!

民族(민족)大運(대운)이 닥쳐왔다고 할지라도 또한 黃白轉換期(황백전환기)目前(목전)에 와 있다 해도 우리 民族(민족)에게 아무런 준비 없이 어떻게 그 대운을 요리하고 감당해 낼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후략

 

19931   鳳宇 書

단기 4325129(1993. 1. 1.) 연정회보 제36호에서

 


硏精한 내 마음


 

  내가 西曆(서력) 1900年生(년생)인데 이때는 이 世界(세계)가 아주 큰 轉換期(전환기)()時期(시기), 또 우리나라가 將次(장차) ()하려는 時節(시절)新舊(신구)交替(교체)되는 韓末期(한말기)였다.

  先親(선친)이 이 複雜多端(복잡다단)官界(관계)投身(투신)하시어 當時(당시) 中大夫(중대부)敕任官級(칙임관급)으로 高宗皇帝(고종황제)恩寵(은총)을 받으셨다. 그러다 左遷(좌천)되시어 陵州郡守(능주군수)地方官(지방관)이 되시고 高宗皇帝(고종황제)께서 禪位(선위)하시게 되자 벌써 朝廷(조정)實權(실관)倭人(왜인)手中(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先親(선친)께서는 斷然(단연) 官界(관계)에서 勇退(용퇴)하시고 國恩(국은) 未報(미보)하신 것을 恒常(항상) 悲歌(비가)慷慨(강개)歲月(세월)을 보내시었다. 그래서 나도 家庭聞見(가정문견)習而成性(습이성성)해서 不知不覺中(부지불각중)不平客(불평객)一人(일인)이 되어 排日運動(배일운동)陰的陽的(음적양적)으로 하는 關係上(관계상) 日政當時(일정당시)에는 아주 棄物(기물)取扱(취급)당하였고 또 내 自身(자신)도 그 當時(당시)에 그 정도로 취급받는 것이 도리어 無妨(무방)하였다. 그래서 나는 學齡(학령)임에 不拘(불구)하고 正規學校(정규학교)에서 日本人(일본인)敎育(교육)을 받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 一高普(일고보)推薦生(추천생)으로 보내는 것을 反對(반대)하고 自習(자습)으로 學力(학력)修得(수득)하였다. 그러니 勿論(물론) 學校(학교)에서 習得(습득)한 것과는 判異(판이)해진 것이다. 科學文明(과학문명)專門學識(전문학식)이 없어서 다른 出世(출세)는 못할 것이라 覺悟(각오)하고 古來式(고래식) 精神修硏法(정신수연법)獨自的(독자적)으로 硏究(연구)도 하고 各界各層(각계각층)精神的(정신적) 先輩(선배)에게 指導(지도)도 받아 보았다

  그래서 精神硏究(정신연구)始作(시작)()에는 우리 韓國(한국)勿論(물론)이오, 同好者(동호자)라면 日本(일본), 中國(중국) 등을 不遠千萬里(불원천만리)하고 歷訪(역방)하며 指導(지도)도 받고 自習(자습)도 하며 ()心法(심법)傳授(전수) 받은 일이 있고  또는 내가 自覺(자각)한 점도 있어서 故人(고인)苦力修行(고력수행)하던 方式(방식)이나 現世先輩(현세선배)들의 指導方式(지도방식)이나 또는 新舊式(신구식)硏究法(연구법)이 비록 外觀(외관)으로는 相異点(상이점)이 있는 것 같으나 歸結點(귀결점)에 와서 보면 大同小異(대동소이)함을 發見(발견)하였고 또 百家書(백가서: 유불선, 인도교, 야소교, 회회교등)에서도 合致点(합치점)이 있음을 確實(확실)把握(파악)한 것이다...후략

 

        癸巳年(1953)  九月  初六日 鳳宇  知罪謹記(지죄근기)    

      단기 4327321(1994. 5. 1.) 연정회보 제44호에서

 


硏精最要訣이 무엇인가?


 

  第一要訣(제일요결)이라고 ()해지는 ()이 여러 가지 있다. 그러나 그 要訣(요결)을 쓴 人物(인물)들의 意思(의사)相異(상이)하다고 보는 것이다. ()를 들면 배가 고프니, 목이 마르니 하는 데는 要訣(요결)은 배고픈 ()는 먹어야 하고, 목마른 ()는 마셔야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 묻든지 正確(정확)要訣(요결)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實際(실제)에 있어서는 그렇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배고픔을 면하고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갈증을 면할 수 있음을 몰라서 먹고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오, 비록 배고프고 목마르되 먹고 마실 수가 없는 까닭에 배가 고프니, 목이 마르니 하는 것이다. 다른 ()도 거의 이런 것이다 ()이 있는 ()()을 먹어야 하고 몸이 疲勞(피로)()는 그 몸을 休息(휴식)해야 하는 것이 要訣(요결)이라는 것은 百人千人(백인천인)에게 물어도 같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實際(실제)로 어떠한가 하면 百人千人(백인천인)이 주장하는 要訣(요결)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實行(실행)되는 것이 ()로 없는 것이다. 그러면 要訣(요결)이라는 것이 正解(정해)가 아닌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要訣(요결)正解(정해)로되 實行(실행)困難(곤란)하다는 말이다. 理由(이유)各自(각자)가 지내보았으니 내가 重言復言(중언부언) 할 필요 없고 그 要訣(요결)이 비록 正解(정해)였다 하더라도 實行(실행)할 수 있는 細目(세목)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本格的(본격적)으로 硏精要訣(연정요결)이 무엇인가 하는 題目(제목)을 쓴 것도 또 이와 같은 것이다. 硏精要訣(연정요결)을 쓰신 前賢(전현)들이 東西古今(동서고금)勿論(물론)하고 數百數千(수백수천)을 헤아릴 수가 있으며 그 著述(저술)數千數萬卷(수천수만권)이 되어 各其經驗(각기경험)대로 各盡其美(각진기미)한 것이다. 어느 것도 正解(정해) 아님이 없으나 그러나 精神(정신)硏究(연구)하는 사람이 ()東西(동서)()古今(고금)莫論(막론)하고 그 ()를 알 수 없을 만치 多數(다수)하나 成功(성공)()碧海中(벽해중)에서 明珠(명주)를 구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것이 그 要訣(요결)不備点(불비점)인가, 또는 初學者(초학자)들이 無誠意(무성의)한 것인가가 後學(후학)들의 疑題(의제)가 되는 것이다. 東洋哲學(동양철학)에서는 儒家(유가)庸學(용학)이나 易學(역학)이 있으며 이 要訣(요결)成功(성공)하는 이가 聖賢君子(성현군자)가 되는 것이요, 要訣(요결)率性(솔성)이라고 하고 佛家(불가)에는 大藏經(대장경)이 있어서 그 要訣(요결)成功(성공)하신 이가 佛菩薩(불보살), 羅漢祖師(나한조사)가 되며 그 要訣(요결)見性(견성)이라고 한다. 仙家(선가)에는 道藏經(도장경), 參同訣(참동결)이 있어서 그 要訣(요결)成功(성공)하신 이가 神仙(신선), 眞人(진인), 天師(천사)가 되는 것이며 그 要訣(요결)明性(명성)이라 한다...후략

 

鳳宇笑記(봉우소기

단기 4329416(1996.6. ) 연정회보 제65호에서

 


硏精院追憶


 

  사람이 一生(일생)을 지내고 보면 所經歷(소경력)을 다 記憶(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 一生(일생)에 만난 人物(인물)들과의 關係(관계)交分(교분)이 있던 사람이 아니면 거의 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名山大川(명산대천)記憶(기억)에는 存在(존재)한다 해도 오래되면 觀覽時(관람시) 그대로 생각 안 되는 것이 普通(보통) 일이오. 少時(소시)에 배운 書冊(서책)老眼(노안)으로 보면 아주 初對面(초대면)하는 것 같은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 一人(일인)局限(국한)問題(문제)가 아니오 世人(세인)의 거의 모두가 그러하다. 이것이 普通(보통)이오 이것이 常情(상정)이다. 怪異(괴이)할 것도 없고 또 怪異(괴이)하게도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몇 가지 不變色(불변색)으로 박힌 印板(인판)이 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잊고져 할 必要(필요)성도 없는 일이 平生(평생)()해서 ()를 세일만큼 있다. () 한 가지인 硏精院(연정원)이 내 頭腦(두뇌)에서 아무리 手術(수술)을 한다 해도 사라질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理由(이유)는 물을 必要(필요) 없고 내가 相愛團(상애단)이니 義烈團(의열단)이니 聯芳社(연방사)同志會(동지회)니 하며 各樣各色(각양각색)同志(동지)糾合(규합)해 보았다勿論(물론) 所得(소득)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精神(정신)硏究(연구)目標(목표)同志(동지)糾合(규합)해서 여러 차례 修鍊(수련)을 해보았으나 번번이 個人資格(개인자격) 向上(향상)()로 한 것이오. ()集力(집력)을 못 하였던 것이다. 事實(사실)艮成莊(간성장)에서는 아주 專攻(전공)하였으나 無條件(무조건)하고 修養(수양)한 것뿐이오 이것을 完遂(완수)함으로써 우리들에게 무슨 關係(관계)성이 있다는 것을 口舌(구설)로 는 發說(발설)한 일이 없다硏精院(연정원) 發足時(발족시)에는 아주 우리 主義(주의)主張(주장)誓天盟心(서천맹심)하고 始作(시작)한 것이오 또 이것이 우리의 結晶體(결정체)가 될 來頭(내두)曙光(서광)이 있을 豫兆(예조)가 많았다. 院友中(원우중)에서도 무엇이 무엇인지 不知(부지)하고 있는 院友(원우)도 있었으나 이것은 下愚不移(하우불이)라 할 수 없는 일이요. 다음은 다 同一(동일) 目標(목표)라는 것을 알게 되고 三冬霜雪(삼동상설) 萬樹凍氷(만수동빙)春花滿開(춘화만개)時節(시절)과 같은 때도 晝夜(주야) 不關(불관)하고 苦力精勤(고력정근)不休(불휴)하던 일인데 意外(의외)에도 左翼系列(좌익계열)謀略(모략)으로 우리를 左翼團體(좌익단체)라고 몰아쳐 警察(경찰)拘束(구속)하고 나서는 별별 嚴刑(엄형)을 다 가하니 나는 아주 病身(병신)이 되었고 院友(원우)들은 모두 解散(해산)이 되었다. 그래도 또다시 再建(재건)을 꿈꾸고 經濟的(경제적) 物質的(물질적)으로 準備(준비)不怠(불태)하고 있던 중에  ,二五事變(육이오사변)勃發(발발)院友中(원우중)에서 第一(제일) 努力(노력)해오던 사람들이 다 犧牲(희생)()하였고 나도 또한 共産黨(공산당)에게 拘束(구속)()했을 뿐만 아니라 별별 苦生(고생) 끝에 겨우 生命(생명)保存(보존)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를 謀害(모해)하든 ()들은 ,二五 事變(육이오사변)渦中(와중)思想的(사상적)으로 모두 處分(처분)되고 우리들을 그 ()들과 連絡(연락)하며 拷問(고문)하던 刑事(형사)들만 如前(여전)히 지금도 刑事(형사)생활을 하는 ()이오. 硏精院友(연정원우)들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各自(각자) 糊口(호구)奔忙(분망)하여 다시 團合(단합)될 날은 期約(기약)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院友(원우)였던 사람만 苦待(고대)할 수 없고 再出發(재출발)勇氣(용기)를 내는 ()이오 무슨 일이 있다해도, 나를 犧牲(희생) 해서라도 이 硏精院(연정원)再生(재생)圖謀(도모)하려는 것이다. 硏精院(연정원) 初發足時(초발족시)와 같이 專攻(전공)을 했으면, 一年(일년)繼續(계속)한다면 우리의 目的(목적)一部(일부)達成(달성)될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머리에서 이 硏精院(연정원)이라는 三字(세자)가 죽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今年(금년)明年(명년)機會(기회)積極(적극) 推進(추진)해서 再發足(재발족)을 할 腹案(복안)確立(확립)하고 있다. 硏精院(연정원)追憶(추억)하며 이 붓을 그치노라.

 


                        癸巳(계사) 七月(칠월) 二十三日(이십삼일)                 


鳳宇書于(봉우서우) 有莘精舍(유신정사)


 


硏精院目的


 

  연정원은 홍익인간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정신연구를 목표로 민족고유의 정통 심신수련법인 조식법(단학)과 도인법 및 체술, 전통 정신문화의 정수를 계승 연마하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국민의 정신계발과 체력향상에 기여하며, 건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이루게 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여, 민족의 융성과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봉우 선생님의 탄신 120주년을 맞이하여 큰스승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100호 안에 실었던 내용 중에서 물물자 수필의 제목이

연정으로 된 내용을 다시 발췌하였습니다.

去去去中知 行行行裡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