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정된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누구나 한정된 인생을 산다.

그 인생의 한계를 모르고 무궤도하게 살아나가면 그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된다.
다같은 인생으로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그 한정된 인생을 가장 뜻있게 소비한 사람이 최상의 지혜로운 인물이요, 가장 무의미하게 소비한 사람이 최하의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최상과 최하의 중간에도 천차만별이 있다. 한 번의 인생을 살았다는 다 같은 자격으로 최종점에 가서 보면 그 인생의 질이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왔다가 간다는 점만 같을 뿐, 그 인생의 답안과 공식이 천차만별이다.

그대는 어떤 답안과 공식을 가지고 이 한정된 인생을 살아가는가?

그 답안과 공식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요, 좀더 자세히 나누면 세가지다. 두 가지란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이며, 선해질 수도 있고 악해질 수도 있는 중간도 있어서 세 가지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한정된 인생으로 흔적도 없이 냄새도 없이 왔다가 간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같다.
이것이 바로 무에서 유가 나고, 유에서 1이 나고 1에서 2와 3이 나와서 천지만물이 모두 동일궤도를 걷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며, 이 점에서는 만물이 모두 같은 상황이다.

이왕 왔다가 갈 바에야 선이니 악이니 할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되어가는 대로 살다 가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이들도 그 숫자가 대단히 많다. 현 세계의 사조인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또는 그 중간노선을 걷는 나라나 모두 동일한 물질문명의 혜택을 입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이 현실주의, 실용주의가 극에 달한 나머지, 사람들은 살아서 어떤 일을 하든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아무 주저없이 마음내키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 전인류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그 원인이 물질문명에 있다.
물질문명의 단점이 현재의 우리의 삶에서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고대문명이라고 하면 동양의 정신문명을 일컫는다.
정신문명에서는 물질보다 정신에 치중해서 비록 한정된 인생일지라도 우주 대자연의 순리와 흐름에 충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비록 육체는 한정이 있으나, 정신만은 우주와 한 흐름이 되어서 개벽 이전부터 다음에 오는 개벽 뒤까지라도 영원히 우주와 함께 한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바로 정신문명의 핵심이다.
비록 끝없이 변화하는 육체 속에 있을지라도 정신이 영원성을 망각하지 않으며, 육체를 위해 정신을 희생하는 불명예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이 정신문명의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물질문명은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에 치우쳐서 우주 원리를 무시하고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생애를 살아간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것이 인간의 고귀한 삶을 파괴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정신문명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뿌리내린다면, 원리로 보아서 그 가치가 얼마 되지 않는 국한된 육체를 위해서 인생을 희생시키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현 세계는 유물론(唯物論)이 극치에 달해서 유심론(唯心論)이 아주 땅에 떨어졌으며,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무슨 고대소설이나 듣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우주에는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물극필반(物極必返)의 이치가 있어서 오래지 않아 다시 정신문명으로 되돌아가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홀린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한정된 육체의 소중함만 알아서 무한한 정신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흐름에서 서둘러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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