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나는 어떻다느니, 나는 무슨일을 하겠다느니, 나의 장래일을 위하여 내 과거일은 이랬어야 하느니, 나와 남을 비교하느니 하는데 대체 '나'라는 것의 한계를 잘 알 수 없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세상에 나온 후부터 나라고 이름붙여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생을 통해 더불어 사는 이 육체를 바로 '나'라고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만약 세상에 나온 이 육체를 나라고 한다면, 이 육체가 나오기 전에는 나라는 것이 없었을 것이요, 또 이 몸이 죽어지면 나라는 것이 자연 소멸될 것인가? 세상의 해석은 이 방면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야 알 수 없고 또한 한 번 죽어지면 그 이후의 세계도 알 수 없는 것이니 '나'라는 것은 한계가 아마 이정도인가?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렇다.
이 육체가 생기기 전에는 나라는 것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 육신이 온 후에 내가 생겼다고 한다면, 또 그래서 이 육신을 '나'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육신이 죽었더라도 그 육신이 나인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호흡이 정지되고 이 몸에 열이 식어서 시체가 되면 그때까지 나를 대표하던 이름으로 그 시체를 부르지 않고 다만 누구의 시체라고 하는 일개의 송장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나에게 가장 가깝던 사람도 모두 나를 피한다.
따라서 이 육체가 나를 대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불변하는 '나'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육체가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 나란 말인가?
어떤 이는 정신(精神)이 곧 나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 육체는 무엇인가?
또는 정신과 육체를 합한 것이 곧 나라고 하나, 그렇게 되면 정신이 육체를 떠나는 찰라에 나라는 것도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속에서 볼 때 이 정신, 이 육체를 다 떠나서도 나라는 존재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즉, 내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후에도 여전히 나를 대표하는 이름이, 아무개라는 명칭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름이 곧 나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또는 내가 출생하기 전의 몸(前身)도 나요, 현재의 몸(現身)도 나요, 미래의 몸(後身)도 불변하는 나라고 하니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각자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나 어느 '나'가 진정한 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이러한 주제는 애초부터 아주 한계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먼저 '나'라는 것을 잘 찾아야 이 한계를 알 수 있다.
저마다의 주장이 다르니 지금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이 한계가 의심이 나서 매듭을 짓지 못하는 것인지, 나 자신의 결론이 있으나 말을 안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그대에게 맡긴다.
그저 나의 한계를 알 수 없다는 의문을 남겨 두고 뒷날의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내가 있다 없다 함도 모두 나요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나'라

            없고 또 없고, 비고 또 비어도 나 아님이 아니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 또한 나로 말미암으니

            세상 사람들이여, 삶과 죽음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빈 산 밝은 달에 '참 나'를 깨달으라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죽음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생(生)을 모르는데 어찌 사(死)를 알리요?"라고 반문하였다.
공자가 삶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질문을 한 자로가 삶을 모르면서 죽음에 대해서 알려고 하니 이를 지적한 것이다. 말하자면 비교할 근거가 되는 생을 알지도 못하면서 죽음을 알아서 무엇하러 묻는가 하신 것이다.
나의 생부터 깨달으면 자연히 죽음은 알 일이라는 뜻이다.
자로가 생을 모르면서 사를 묻다가 반문을 당하기는 했지만, 자로 역시 '나의 한계'에 의문을 가졌던 듯하다.

역시 공자의 제자인 안자(顔子)는 온종일 어리석은 사람처럼 앉아있기만 하였으나 공자는 그를 두고 "힘써 배우는 사람 또한 이와 같다"고 하였다.
더불어 안자는 "가장 높은 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순임금은 누구이며, 나는 또 누구인가?"라고 하였다.
공자와 안자는 생을 깨닫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천년 만년 이전까지 나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나를 해석하였다.
'나'라는 것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 유아독존하라는 말씀이다.
이 정도로써 그대의 후일 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나만 깨달으면 나의 한계도 알 수 있고, 내 주변의 물질의 이치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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