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난 일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또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도 많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자.
상고사는 잘 알 수 없으니 접어두고, 중고역사(中古歷史)에서 을지문덕이 수나라 병사 백만을 청천강에서 대파하였다. 당시 수(隋)라면 중국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강국이요, 또 우문술이라면 상당한 장수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요, 병력이 태부족이었는데 수나라 군대를 청천강까지 유인하여 전멸시켰다.

야사에 전하기를, 수나라 병사들이 청천강 북쪽 기슭에 와서 도하작전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 강물의 깊이를 알지 못해서 주저하였다. 그때 강변에서 승려 세 사람이 강을 건너는데, 물이 무릎까지밖에 차지 않았다.
승려들이 강을 다 건너가는 것을 본 수나라 장수가 곧 대군에게 도강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대군이 강의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 수심이 깊고 또 고구려군이 반격하는 바람에 수나라 군사가 거의 전멸되었다.
그 승려들은 사람이 아니고 청천강 남쪽 기슭의 어느 사찰에 봉안한 미륵불 세 분이었다고 한다.
비록 알 수 없는 일이나 수나라 군대가 청천강을 건너다가 패망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가 여기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을지문덕이 무슨 병력과 병법으로 수나라의 그 엄청난 대군을 전멸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또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와 개인적으로 대결을 하여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병대병(兵對兵)의 전술이었을 것이다. 그 전술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일시적으로 수나라 병사가 실수하여 패했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추측해 보더라도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재반격을 하였을 것인데,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주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수나라 군사로 하여금 뒤돌아 볼 엄두를 못 내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그 병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전쟁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깊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전래되던 우리의 병법은 무엇인가? 무기는 무엇이 있었는가? 을지문덕은 무슨 공부를 하던 사람인가?
이러한 것들을 각 방면으로 조사해야 한다.
역사를 볼 적에 주마간산식으로 보아서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다.

연개소문이 당나라 병사를 대파할 때에도 보면,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중국을 평정하고 그 여세를 몰아 우리나라를 범하였다. 당시 중국의 천하영재를 모두 모아 가지고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무슨 고유의 전통적인 무예나 병법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연개소문의 지략과 용맹은 당나라에서 감히 상대를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중국에서는 열 여덟 종류의 무기를 사용하였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무기를 사용하였는가? 또 중국에서는 병력 배치 방법으로 팔문법(八門法)이 유행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병력 배치법을 썼는가?

이 모든 의문을 풀어 줄 자료가 한 건도 역사에 전하는 것이 없다.
그저 연개소문이 용맹하였다는 것 뿐이다. 이래서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
역사가들이여! 고고학을 좀 더 연구하고 나서 역사를 쓰라는 것이다. 당시 민간풍속은 무엇이었으며, 국가 정치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도 현재 우리가 보는 역사책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도(花浪道)가 있었는데, 그것이 있었다는 기록만 엿보일 뿐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세한 것은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다.
화랑도에 나오는 국선(國仙)이라는 것도, 어떤 수련을 해야 국선이 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삼국사는 완전히 피상적인 것만 남았을 뿐이다.
당시 우리의 예술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하였던 것은 사실인데, 역시 그 예술의 흔적은 있으나 그 예술이 전래되지는 못하였다. 그 신라 말기의 견훤이나 궁예 역시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장수였는데, 그들이 무슨 병법을 지니고 있었는지 상세히 알 길이 없다.

그 다음 고려사에 보면, 초기에 서희(徐熙)같은 명장이 있었고, 중기에 강감찬 같은 명장이 있어서 종종 그 전하는 이야기들은 있으나, 역사로 보아서는 조금도 알 수가 없다.
또 도자기 예술도 당시에는 보통으로 알았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뛰어난 공예술을 다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소중화(小中華)라고 자처한 유학자들이 자기 나라에 전래하는 인심이나 풍속을 기록한 일이 없으니,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선개국 초기에는 문무(文武)를 모두 겸비하였던 듯하다.
태조대왕의 용맹스러운 모습이나, 이지란(李之蘭)의 용맹한 자태가 서로 우열을 다투고, 또 세종대왕의 문화정치는 역사적으로 뛰어났다.
당시 김종서(金宗瑞)같은 재상은 문무를 겸하였고 세조대왕도 역시 문무의 재인이었다.
그렇다면, 개국초기에는 선비들이 문과 무를 모두 공부한 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에도 선조대왕 당시에 지혜로운 인물이 속출하였는데, 이들의 맥을 살펴보면 순수한 주자학파가 있는 반면에,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전래하는 성리학(철학)을 전공한 이도 있다. 이 방면의 학자들을 주자학파에서는 소강절학파라고 지칭하였으나, 사실은 우리나라 유교는 주자학파뿐이요, 소강절파는 전래된 일이 없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고래부터 전해오는 학문을 연구한 분들이었던 것이다. 또 주자학파는 교리에 치중한 교파(敎派)가 대부분인 것 같고, 본체를 공부하는 심파(心派)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우리 고유의 철학을 연구한 이들은 주자학파의 탄압이 무서워서 발표를 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화담 서경덕, 북창 정렴, 남명 조식, 구봉 송익필, 율곡 이이, 고청 서기, 미수 허목 등과 같은 인물이나 박엽, 허생, 진묵, 서산, 사명당 같은 이들은 모두 그런 이들이며, 그 이름이 별로 나지 못했다 해도 숨어 있던 선비 중에도 무수한 위인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율곡선생 한 분만이 국가적으로 대접을 받았을 뿐 다른 이들은 입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 모두가 주자학파의 횡포 때문이었다.

이렇게 회고해 보면 조선문화가 선조대왕 시대까지는 그래도 전래되었으나, 그 후에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인조대왕 이후 인물이 나오지 못했으며, 효종대왕때에 약간의 숨은 선비들이 있었으나 감히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2백년간은 역사에 기록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무엇을 참고하여 붓을 드는가, 그것이 나는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인물전기부터 왜곡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런가 하면, 전기라는 것은 마땅히 주인공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공부했는가를 첫 출발부터 잘잘못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당연하다.
말하자면 임진왜란에 충무공이 세기적인 위인으로 성공한 이유가 자초지종 상세히 기록되어야 다음에 제2의 충무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가치라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전기에는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테면 거두절미의 문학일 뿐이다.
충무공이 수련시기에 무슨 수양을 해서 어느 정도의 단계에 갔는가? 관직의 길로 나가서 수양한 실력을 어떻게 활용했으며, 그리하여 어떤 전략으로 명량, 노량 대해전과 같은 신화적인 전과를 올렸는가가 상세히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거북선을 만들게 된 원인과 그 방식이 기록되어야 할 것인데, 의외로 거북선에 대한 평면 외관도는 있으나 입체설명도와 해설이 없고, 충무공 자신의 거북선 제작 동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나라 인물전기의 부족한 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율곡과 충무공의 관계에 얽힌 야담이 많은데, 이 야담을 구체화해서 후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끔 명료하게 기록하지 않고, 다만 상투적으로 그 인물에 대한 칭찬이나 늘어 놓아서 외양만 번지르르하게 써 놓은 것 뿐이다.
충무공 뿐만이 아니다. 조선 오백년의 인물전기에 실린 사람들 모두 단점이라고는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인물전만 가지고는 후대가 그 진실을 알 길이 없다. 내가 지금 이렇게 중언부언하는 것은 현재의 역사책에는 우리나라의 전래되어온 고대문화가 한 건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한심해서다.

우리의 대황조께서는 태초에 한 기운이 세 갈래로 맑은 형태로 형상화되고, 그 세 갈래의 형태가 다시 한 기운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다.

또 장차 삼교가 통합되어 한 집안이 될 것이며, 간방의 도가 다시 빛나서 시작과 끝을 이루리라고 하셨다.
여기서의 간방은 바로 우리 나라를 가리킨다. 이를 공자도 묵시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석가모니 부처는 미륵불의 도래를 말하였는데, 미륵불의 용화세계라는 것도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여러 방면으로 각양 각색의 설들을 종합해 볼진대, 어느 모로 보든지 성인이 시작과 끝을 완성할 도를 다할 곳은 바로 우리 간방이다. 여기서는 내가 이런 정도로 말하지만, 실제로 중국이나 인도나 구미의 성현들이 모두 우리나라에서 장차 구세주가 나온다고 말한 일이 있다. 이런 점은 종교가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구미 각국에서는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일에 열심이다.
물리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자들과 예술가들도 동양의 정신을 찾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젊은이와 지식인들은 동양의 고대철학이라면 덮어놓고 미신이라고 돌려버린다.
이 무슨 역설인가? 서양의 선진국에서는 동양철학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고대철학을 미신이라고 반대하니,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숭배하는 구미의 철학자들이 미신 숭배자란 말인가?
우리는 먼저 역사의 이면에 가리워진 우리의 고대 전통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전통철학이 미신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과학이라는 미신에 젖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 철학을 연구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흩어진 고서들에서 찾아 읽는 방법이 있고, 또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학문을 배우는 방법이 있으며, 실질적으로 그러한 철학을 체득한 이들에게서 배우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사가들이 피상적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우리의 사상과 철학을 다시 부활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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